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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1919 또는 왕실로 읽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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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3 19:24 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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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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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백 투 더 1919
저자/출판사 : 오승훈 , 엄지원 , 최하얀, 철수와영희
쪽수 : 380쪽
출판일 : 2020-04-11
ISBN : 9791188215423
정가 : 18000

머리말: 100년 전 ‘오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19년 1일 1일
기미년 밝았다, 온 강토를 광복의 기운으로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간다
“민족자결주의는 당위 명제니 우리의 충정을 모아야 않겠소”
황포강변에 부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의 바람인가
14원 하던 쌀값이 38원? 굶주린 궁민들은 분노한다
■ 해 넘기도록 맹렬한 돌림감기
■ 일본 순사 매질은 조선 사람만 골라 하나?

1919년 1월 2일
일제하 쌀값 앙등, 참으로 참담하다
총독부 무단통치, 임계점 넘었다
패전국 독일… 배상금에 경제난까지 민심 흉흉
쌀값 폭등에 동맹파업 급증…노동자 총궐기 나서나
조선 땅 집어삼킨 동양척식회사
선산에 조상도 못 묻다니
■ 강도랑 한식구 돼서 그리도 감개무량?
■ 돈까스·카레·오무라이스… 서양 맛에 빠진 일본

1919년 1월 9일
재동경 조선 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 결성
동경의 조선인 유학생은 일제의 지독한 골칫거리?
최남선 vs 윤치호… 파리강화회의 논쟁
■ 셜록 홈스가 조선땅에 왔다
■ 부랑자로 검거된 양반들

1919년 1월 16일
김좌진의 탄식 “광복회 동지들이여!”
총독부마저 비판한 친일파들
일본 하층민에게 조선은 기회의 땅
‘붉은 로자’ 옛 동지들에게 피살
■ 세상 놀래킨 무오년의 범죄들
■ 차별 조장하고 뒤로 훈수 두는 총독부

1919년 1월 23일
광무황제 뇌일혈로 21일 급서
외세 앞에 유약했던 봉건제국의 종언
조선인들 충격과 통곡… 독립진영 기민한 움직임
파리강화회의 개막…일제, 민족자결주의 보도 금지
■ “식혜에 무슨 짓을…” 고종 독살설 확산

1919년 1월 30일
천도교 손병희 교주, 독립선언 준비 지시
천도교는 왜 독립운동 앞장섰나
동경 이광수·경성 최남선 ‘독립선언문’ 집필
“동경서도 독립운동하는데…” 경성 청년들도 나선다
■ 조선인 목숨이 하마보다 못하오?

1919년 2월 9일
“세계 만국에 조선 독립을 선언하노라”
‘적국의 심장부’ 아랑곳없이 절로 터져 나온 “만세”
선언문 곳곳 ‘결연한 기백’…왕정과 결별·새 국가 쟁취 선포
사각 모자에 선언서 숨겨…문익점 버금가는 첩보전
독립선언 영향 준 일본의 ‘두 얼굴 민주주의’
하늘도 돕는 신한청년당 독립투쟁
연해주 윤해·고창일 씨, 파리강화회의행
국내서도 ‘독립선언’ 거사 착수…이완용 동참 거부
■ 잇따른 화재에 도깨비불 소문… 흉흉한 민심
■ 독립운동 위해 혼례 열흘 만에 생이별

1919년 2월 14일
‘일제·유교 굴레’ 이중속박, 담대히 떨치고 선 신여성
제발 저린 일본, 사이온지 암살 경계령
조선 여자 임금, 일본 남자 임금의 반의반 토막
■ 19살에 잡지 〈창조〉 창간한 김동인

1919년 2월 21일
경성 학생들, 광무황제 장례 전후 ‘만세’ 거사
여운형의 명문, 일본서도 “새겨들어야”
장덕수 체포, 운명의 장난?
사형 예고에도 의연한 대한광복회원들
‘동경 2·8만세’ 일주일 만에 유학생 아홉 명에 실형
■ 공무원·교사가 꿈인 요즘 학생들

1919년 2월 25일
독립선언 드디어 ‘3월 1일’ 확정
거사 자금은 천도교, 선언서 번역은 기독교가 맡기로
전문학교 학생들, 종교계 독립선언 합류 결정
“사회주의가 곧 반일”… 한인사회당 꿈은 어디로
■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1919년 2월 26일
최초의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결성
각지 독립운동가는 왜 연해주에 모였나
“열강에 독립청원서 전하라” 상해·동경으로 밀사 급파
■ 파리회의 간다던 이승만 미 병원에?
■ 뭐 먹을 것 있다고 동포 등쳐먹소?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최종 확정…이제 ‘거사’만 남았다
친일 첩자 오해로 총 맞은 한용운…민족대표 이모저모
자정까지 2만 1000부 극비 인쇄… 공장 감독도 몰랐다
■ 족보 밑에 숨긴 선언서 발각 직전 정전…위기의 순간들

1919년 3월 1일
유관순과 동기들 “담 넘어서라도”…군중들 경성으로
“거사의 날 밝았다”…친일파 심장부 태화관에서 독립선포
3·1선언서, 세계에 외친 ‘인류평등’…평화와 공존 정신 담았다
‘종이 태극기 물결’ 육조 거리
■ 감시 피해 기차와 인편으로…배포 큰 선언서 배포작전
■ 민족대표 권동진 일본 조선군 사령관과 밀회

1919년 3월 4일
맨손 시위대에 총포…조선은 계엄상태
민족대표 만세삼창 직후 총독부 연행
총독부, “알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
■ 3월 1일 동경서도 대규모 시위 왜?

1919년 3월 6일
경성서 다시, 거침없는 만세봉기
이승만, 윌슨에 위임통치 청원
“서양의 동정을 얻어야” 독립진영 근심거리 이승만
■ “조선인 폭도”…〈아사히〉, 아싸리 정론지 이름 떼라

1919년 3월 18일
독립투사 몰려드는 상해…임시정부 거점되나
해외에서도 ‘대한독립만세’ 함성
“인류 평등 위해 육탄혈전 독립 완성”
우리 대표 김규식 씨, 천신만고 끝에 불란서 도착
■ “조선이 독립했단 게 사실이오?”

1919년 4월 3일
임시정부 각론, 상해서 격돌
국내서도 정부 수립 논의 활발
3·1 한 달…더 거세진 불길
■ 일왕에게 경고하오…19살 유생의 기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신채호의 일갈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
■ 이완용의 적반하장…토착왜구에겐 ‘만세’가 ‘망동’으로 들리오?

1919년 4월 19일
일제, 제암리 주민 30명 교회 가둬놓고 학살
화수리선 순사 죽음 명분 새벽녘 온 마을 태워
선교사들, 참상 고발 앞장
미국 독립의 심장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 일본도에 양팔 잘려도 끝까지 “조선독립 만세”

1919년 4월 29일
만세시위에 빚졌으니 독립전쟁 길 나서리
■ 조선인 수감자들 감옥 안에서도 만세시위 이어가

부록
〈한겨레〉가 뽑은 독립운동 ‘민중대표’ 48인
역사학자 좌담: ‘3·1운동 100년’의 현재적 의미

참고 문헌




왕실로 읽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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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왕실로 읽는 세계사
저자/출판사 : 우야마 다쿠에이, 책밥
쪽수 : 312쪽
출판일 : 2019-10-25
ISBN : 9791186925928
정가 : 16800

머리말
제1장 세계 왕실에 대한 이해
01 왕과 왕실의 존재 이유
왜 혈통에 집착하는가|정통주의의 부활|유럽을 통해 배운 일본의 정통주의|왕의 혈통을 잃은 중국|국가의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세계 왕실의 현재
02 왕위계승에 있어 남녀차별이 존재하는가
남계 천황으로 한정시킨 것은 여성차별|여계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남계 계승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논리|사실 아시아도 일부일처제|측실제와 공첩제의 차이|유럽에서 여계 계승을 인정한 까닭

제2장 유럽의 군주들
03 왕과 황제는 똑같지 않다!
황제는 왕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가|로마 황제의 제위 계승|러시아인이 로마 제국의 제위를 계승하다|유럽에 황실이 세 곳 있었던 까닭|황제가 없는 대영 제국
04 왕실은 탄생 배경부터 다르다
황제가 되어도 왕이 될 수는 없다|오늘날 왕실이 주변부로 남게 된 이유|중심부 왕국의 왕권 약화|카롤링거가의 혈통(독일, 프랑스, 이탈리아)|해적이 시조인 왕실(영국, 러시아, 북유럽)|내 첫 번째 목표는 국왕의 존엄|‘펜은 칼보다 강하다’의 본래 의미
05 그림자 군주, 교황
교황의 권위와 군주의 권위|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의 유착관계와 불법적인 제위 수여|떳떳지 못한 과거를 가진 교황 레오 3세|중세에는 국가의식이 없었다

제3장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왕실
06 영국 왕실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다
왕실의 인종과 종교|개전 연설로 국민을 고무시킨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왜 ‘찰스 황태자’인가|영국 왕실은 독일인 가계|여왕의 이미지를 이용한 대영 제국|영국 왕조의 변천
07 왜 영국 왕실은 남고, 프랑스 왕실은 사라졌는가
왕을 죽인 영국인과 프랑스인|부르주아란|누가 국왕의 처형을 원하는가|공화제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중산계급|적절하게 타협한 영국 국민|프랑스의 하층계급이 강력했던 이유|옛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주리라 믿었던 황제
08 야경의 나라 네덜란드는 언제 왕국이 되었을까
마약도 매춘도 자기 책임인 자유의 나라|과거 독일의 일부였던 네덜란드|독립 전쟁을 치른 네덜란드 왕실의 시조|독일의 귀족이었던 나사우가|영국 왕이 된 네덜란드 총독|공화국의 전통을 버린 네덜란드|3대로 이어진 여왕의 나라

제4장 스페인, 벨기에, 독일의 왕실
09 스페인 왕실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자손
저주받은 스페인 왕가|합스부르크가는 왜 근친결혼을 반복했는가|두 개의 합스부르크 왕가|프랑스인이 스페인 왕실의 시조|국민을 고통에 빠트린 스페인 왕|원칙상 남계가 계승하는 스페인 왕실|포르투갈의 두 왕조
10 영국에 의해 탄생한 벨기에 왕실
왕비가 남편의 이미지 전략을 담당하다|벨기에 사상 첫 여왕의 탄생|벨기에의 독립|벨기에에 대한 영국의 야심|독일의 일부였던 룩셈부르크|7곳의 극소국가
11 살아남기 위한 왕실의 치열한 경쟁, 독일과 이탈리아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환상의 통일교황국|강대한 프로이센 왕국|왜 ‘독일 왕국’이 아니라 ‘독일 제국’인가|독일 제국을 움직인 새로운 지배층|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토지를 내놓은 사보이아가|호엔촐레른가와 사보이아가의 최후

제5장 북유럽과 동유럽의 왕실
12 뜻밖의 인물이 왕실의 시조, 북유럽 왕실의 뿌리
전란을 틈탄 스웨덴 왕실의 시조 베르나도트|운명을 가른 두 사람, 베르나도트와 뮈라|스웨덴의 스칸디나비아반도 통일|스웨덴 역사상 최초의 여왕 탄생에 대한 기대|재색을 겸비한 여왕 마르그레테 2세|덴마크 왕조의 뿌리는 독일|덴마크 왕실의 혈통을 이은 노르웨이 왕실
13 러시아에서 물려받은 황제전제주의의 DNA
푸틴이 경애하는 알렉산드르 3세|현대판 러시아 황제 푸틴의 야망|로마 제국의 계승자가 된 이반 3세|황제전제주의가 필요했던 러시아|로마노프 왕조의 약진|여제 예카테리나 2세|황후가 쿠데타를 일으키다|왕좌 위의 창부
14 동유럽과 남유럽, 유럽의 복합 민족 왕국
아시아와의 접합 지역, 동유럽과 남유럽|복합 민족 왕국의 세력 강화|복합 민족 왕국의 해체|전쟁으로 황폐화 된 황금의 프라하

제6장 중국의 왕실
15 ‘군주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맹자의 생각
‘폐하’의 ‘하’가 ‘下(아래 하)’자인 이유|‘황제’라는 칭호의 유래|중국 황제에 대항한 일본의 천황|중국 황제의 황통을 지키려던 남자|폐위되어 마땅한 폭군들|역성 혁명으로 날조된 역사|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다더냐
16 왜 중국은 황실을 남기지 않았을까
황제제도를 전면 부정한 쑨원|혁명의 원동력이 된 민족자본가|누가 황제를 없앴는가|일본에 살고 있는 청나라 황족의 자손|황제제도 붕괴로 인한 대혼란|천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본의 근대 혁명

제7장 동남아시아, 인도 · 중앙아시아의 왕실
17 자산보유 1위, 2위는 동남아시아 왕실
불경죄로 연행된 관광객|태국에 발전과 안정을 가져다준 짜끄리 왕조|위대한 앙코르 왕조의 후예|동남아시아에 남아 있는 왕실과 사라진 왕실|제국이라 자칭한 베트남|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18 티무르 제국과 무굴 제국은 왜 제국인가
최강이면서 최상급으로 격이 높은 군주|칭기즈의 후계자 티무르|무굴은 몽골의 또 다른 표현|바부르가 황제라고 자부한 근거|오스만 황제도 영국 왕도 그의 아래에 있다|중앙아시아의 영웅, 우즈베크 샤이바니 왕조|네팔의 군주제가 폐지된 이유|‘행복의 나라’ 부탄 왕국의 실태

제8장 중동의 왕실
19 민주화로 흔들리는 아라비아반도의 군주들
자식이 89명! 사우디아라비아의 왕|렌티어 국가란|왕족의 오만과 싸우는 무함마드 왕세자| 카타르 군주는 왕이 아니라 아미르|왕국으로 바꾼 바레인|쿠웨이트의 실태는 절대군주제|오만의 군주는 술탄
20 무함마드의 후예가 세운 현대의 아랍 왕국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손은 현존하는가|이슬람 혈통의 근거|무함마드 손자인 하산의 핏줄|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맘|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원|영국의 꼭두각시였던 이라크 하심 왕조|문벌을 자랑하는 요르단 하심 왕조
21 술탄과 샤는 왜 사라졌는가
칼리프와 술탄의 차이|오스만 제국의 칼리프 강탈|오스만 제국의 멸망|오스만가를 용서하지 않았던 무스타파 케말|이란의 왕 ‘샤 ’의 계보|최후의 샤

제9장 아프리카와 미국의 왕실
22 왜 아프리카에는 세 왕국밖에 남지 않았는가
반라 소녀들의 축제|스와질란드 왕국은 절대 왕정|‘천공의 왕국’ 레소토|무함마드의 후예를 자처하는 모로코 왕실|과거 아프리카에는 32개의 왕국이 있었다|왜 독립 아프리카는 왕국이 되지 못했는가|왕국이 무너진 나라: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에티오피아는 제국인가
23 왜 미국은 왕이 없을까
잉카 제국은 ‘제국’인가|왕국이 남아 있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스페인 군인이 멕시코 황제로|합스부르크 황족이 멕시코 황제가 되다|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노예제를 폐지한 브라질 황제|워싱턴은 왕의 자리를 고사했다|캐나다의 왕은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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